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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정말 바닥나는가

숫자로 보는 한국 연금의 현재와 개혁 선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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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5년 고갈설, 나는 낸 돈 한 푼도 못 돌려받는 걸까?

‘2055년 기금 소진’ 숫자가 탄생한 계산식

매달 급여 명세서에서 원천징수되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보며 대다수 직장인이 품는 의문은 단순합니다. 2055년 기금이 소진되면 지금까지 낸 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불안입니다. 2055년이라는 시한은 결코 추상적인 소문이 아닙니다. 정부 공식 위원회가 정교한 수리적 모델링을 거쳐 산출한 연도입니다.

2023년 1월 27일 보건복지부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위원장 전병목)는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분석 기간은 2023년부터 2093년까지 70년입니다. 현행 제도인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조건에서 도출된 궤적은 뚜렷했습니다. 적립기금은 2040년에 1,755조 원으로 정점에 도달합니다. 이후 연간 지출이 총수입을 넘어서면서 2041년 수지 적자가 발생합니다. 적자가 누적된 기금은 가파르게 줄어들어 2055년 -47조 원에 도달하며 전액 소진됩니다.

5년 전인 2018년 제4차 재정계산과 비교하면 적자 전환은 2042년에서 2041년으로 1년, 기금 소진은 2057년에서 2055년으로 2년 앞당겨졌습니다. 기금 소진 시점이 이처럼 앞당겨진 배경에는 인구와 경제 변수의 가파른 악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재정추계전문위원회가 적용한 인구 기본가정은 통계청의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합계출산율은 2023년 0.73명, 2024년 최저 0.70명까지 떨어진 뒤 점진적으로 반등해 2030년 0.96명, 2040년 1.19명을 거쳐 2050년 이후 1.21명으로 수렴한다고 전제했습니다. 제4차 추계 당시 장기 수렴치로 설정했던 1.38명보다 0.17명 하향 조정된 수치입니다. 출생아 수의 감소는 연금을 납부할 미래 경제활동인구의 축소를 뜻합니다.

경제 변수 역시 하향 조정되었습니다. 제5차 추계에서 2023년부터 2093년까지 70년 동안의 연평균 실질경제성장률 기본가정은 제4차 추계의 1.1%에서 0.7%로 0.4%포인트 낮아졌습니다. 같은 기간 연평균 실질임금상승률 가정 또한 1.9%에서 1.7%로 0.2%포인트 떨어졌습니다. 성장률과 임금상승률의 둔화는 기금으로 유입되는 보험료 총액의 증가세를 구조적으로 꺾어놓습니다.

저출생으로 보험료를 납부할 인구가 줄어들고 저성장으로 소득 증가 폭이 둔화하는 변수들이 계산식에 반영된 결과입니다. 제5차 재정추계 시산결과에서 국민연금 적립기금은 2041년 수지 적자로 전환된 뒤, 2055년에 -47조 원에 도달하며 전액 소진됩니다.

‘기금 고갈’과 ‘국가 부도’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

적립기금이 0원에 도달한다는 계산이 곧 국가의 연금 지급 불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일상적인 금융 거래에서 통장 잔고가 바닥나면 거래가 정지되지만, 공적연금의 재정 운영 방식은 민간 금융기관의 저축 계좌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공적연금의 운영 방식은 크게 기금을 미리 쌓아두고 운용수익과 원금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적립방식'과, 당해 연도에 은퇴 세대에게 지급할 연금을 그해 일하는 현역 세대로부터 걷어 즉시 지급하는 '부과방식'으로 나뉩니다.

대한민국 국민연금은 제도 도입 초기 보험료 수입이 지출보다 훨씬 많아 막대한 잉여금을 기금으로 쌓아온 부분적립방식을 취해왔습니다. 반면 2055년 기금 소진은 적립방식의 공간이 완전히 사라지고 순수 부과방식으로 강제 전환되는 시점을 뜻합니다. 즉, 쌓아둔 저축액에서 연금을 빼내 주는 방식이 끝나고, 그해 걷은 보험료 수입만으로 그해 연금 지출을 채우는 체계로 이행하는 것입니다.

해외 주요 선진국들의 공적연금 궤적이 이를 증명합니다. 독일은 1957년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 재임 당시 연금개혁법을 통해 기존 적립방식에서 현역 근로자 세대가 은퇴 세대의 연금을 직접 부양하는 부과방식으로 공식 전환했습니다. 독일을 비롯한 대다수 유럽 국가들은 거대한 적립기금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연금 지급을 중단하거나 부도를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OECD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OECD 회원국들이 부과방식 공적연금을 뒷받침하기 위해 운용하는 공적연금준비기금 자산 총액은 미화 6조 9,000억 달러에 달합니다. 부과방식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들도 기금을 전액 쌓아두는 대신 일시적인 충격을 완충하는 완충용 준비기금을 일정 수준 유지하며 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금이 소진된다고 해서 연금 수령액이 0원이 되는 디폴트가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쟁점은 연금 지급 여부 자체가 아니라 부과방식으로 전환했을 때 지탱해야 할 비용의 규모입니다.

제5차 재정추계 결과에 따르면, 현행 9%의 보험료율을 유지하다가 2055년 기금이 소진되어 순수 부과방식으로 전환될 경우 당해 연도 연금 지급액을 그해 근로자의 소득 총액으로 나눈 '부과방식비용률'은 2055년 당해 연도에 26.1%로 치솟습니다. 제4차 추계 당시의 24.6%보다 1.5%포인트 높아진 수치입니다. 이 비용률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60년 29.8%를 거쳐 2078년에는 35.0%까지 상승합니다.

2025년 6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분석에서도 모수개혁을 통해 보험료율을 13%로, 명목소득대체율을 43%로 조정하더라도 기금 소진 이후 순수 부과방식으로 전환될 경우 2079년 필요 보험료율은 39.2%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었습니다. 미래의 현역 세대가 자신의 소득에서 이처럼 막대한 비율을 오직 국민연금 보험료로만 납부해야 노인 세대의 연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금이 고갈되어도 연금 자체는 지급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78년에 부과방식비용률이 35.0%에 달한다는 통계는, 기금 고갈 이후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미래 세대 소득의 3분의 1 이상을 연금 보험료로 징수해야 한다는 수리적 결과를 가리킵니다.

‘국가 지급 보장 명문화’는 왜 만병통치약이 아닌가

기금 고갈에 따른 청년 세대의 불신과 저항이 거세지자 정치권이 제시한 카드가 '국가 지급보장 명문화'입니다. 국민연금법에 국가가 연금 지급을 최종적으로 책임진다는 문구를 법률로 명시하면 국민적 불안이 해소될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국가의 지급 책무를 법에 직접 못 박는 논의는 오랜 기간 표류했습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의 정리에 따르면, 2013년 5월 국회에서 논의되던 국민연금 국가 지급보장 명문화 개정안은 미래 재정 부담 등의 논란으로 인해 처리가 보류되었습니다. 2018년 8월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역시 국가 지급보장 명문화가 현세대의 막연한 불안을 달래는 데는 기여할 수 있지만, 결국 그 재원은 미래의 세금과 재정으로 충당해야 하므로 미래 세대에 막대한 재정부담을 고스란히 떠넘기는 근본적 한계를 지닌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는 2025년 국민연금법 개정을 통해 국가의 급여 지급보장 책임을 법률에 명문화했으며, 이는 2026년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법 조문에 국가가 지급을 보장한다는 문장이 들어갔다고 해서 연금 기금의 재정 적자가 상쇄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률 문구는 돈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기금이 소진된 상태에서 국가가 연금 지급을 보장하는 방법은 두 가지뿐입니다. 미래 근로 세대의 보험료율을 35% 안팎까지 강제로 끌어올리거나, 일반 정부 재정인 조세를 투입해 부족분을 메우는 것입니다.

선례를 가진 국가는 이미 천문학적인 국가 예산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부과방식을 운용하는 독일의 경우, 2026년 기준 공적연금 유지를 위한 연방 정부의 재정보조금 투입 규모가 연간 약 1,280억 유로에 이릅니다. 전체 연금 지출의 약 25% 이상을 연방 예산, 즉 국민이 낸 세금으로 보전하고 있는 셈입니다. 독일은 이러한 재정 충격을 현역 세대와 수급자가 분담하도록 하기 위해 2004년 법정보험 재정기반 확보법을 의결하고 사회법전 제6권 제68조에 가중치 계수 알파(0.25)를 반영한 '지속가능성 계수'를 도입해 2005년 1월 1일부터 연금액을 자동으로 조정해왔습니다.

한국이 직면한 조세 부담의 상한선은 더욱 가혹합니다. 2026년 9월 28일 국회 연금개혁 정책토론회에서 양재진 연세대 교수가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제도 구조개혁 없이 기금이 고갈되어 이를 순수 부과방식과 국가 재정으로 메우려 할 경우 2079년에 이르면 소득의 39.2%를 보험료로 징수하거나 매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최대 6.3%에 달하는 국고를 쏟아부어야 합니다. 국방, 복지, 교육, 인프라에 쓰여야 할 국가 예산 중 GDP의 6%가 넘는 천문학적 자금이 매년 연금 적자를 메우는 데 투입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미래 세대의 과도한 부담을 방지하기 위해 2023년 10월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최종 보고서를 통해 2055년 기금 고갈 후 미래 세대의 보험료율 부담이 30~35%로 폭증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보험료율을 15% 또는 18%로 단계적 인상하고 연금 수급개시 연령을 68세로 늦추어야 한다는 시나리오를 정부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법전에 새겨진 '국가 지급 보장'이라는 문구는 결코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 아닙니다. 기금이 바닥난 후 국가는 약속한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 미래 세대의 소득에서 30%를 웃도는 보험료를 원천징수하거나, GDP의 6%가 넘는 천문학적인 국고를 연금 적자 보전에 투입하는 선택지 외에 다른 물리적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저부담·고급여 35년의 청구서

1988년의 달콤한 덫: 3% 내고 70% 받는 기적의 계산법

대한민국 국민연금의 재정 시계가 2055년을 향해 가파르게 줄어든 근본적인 원인은 제도가 첫발을 내디딘 1988년의 설계도에 새겨져 있습니다. 1973년 12월 24일 박정희 정부는 법률 제2655호로 ‘국민복지연금법’을 제정·공포했습니다. 그러나 1974년 1월 제1차 석유파동에 따른 경제 불황이 닥치자 정부는 법의 시행을 무기한 연기했습니다. 멈춰 섰던 공적연금 도입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12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1986년 4월 유럽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전두환 대통령은 보건사회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관계 부처에 유보되었던 연금 제도를 제6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의 핵심 과제로 다시 추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정부는 1986년 12월 법률 개정안을 확정하면서 제도의 핵심 골격을 완성했습니다. 당시 정책 결정자들이 직면한 과제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매달 강제 징수하는 연금 보험료에 대한 조세 저항을 잠재우는 일이었습니다. 초기 국민 저항을 최소화하고 제도를 조기에 안착시키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납부 부담을 낮추고 수령액을 높게 약속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정부는 국민연금법 제69조와 부칙을 통해 시행 첫 5개년인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적용할 보험료율을 월 소득의 3%로 규정했습니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각각 1.5%씩 절반만 부담하는 구조였습니다. 반면 40년 가입을 기준으로 약속한 소득대체율은 70%에 달했습니다. 소득의 3%를 내면서 은퇴 후에는 기준소득월액의 70%를 연금으로 돌려받는 계산식이 공식화된 것입니다. 재정 안정을 위해 보험료율을 1993년에 6%, 1998년에 9%로 단계적으로 올리는 인상 일정을 법률 부칙에 미리 못 박아두기는 했으나, 초기 부담은 3%에 묶여 있었습니다. 1987년 9월 18일 보건사회부는 이 제도의 운영과 적립기금 관리를 전담할 독립 공공기관으로 국민연금관리공단을 설립했고, 1988년 1월 1일 국민연금은 소득대체율 70%, 보험료율 3%의 저부담·고급여 구조로 출범했습니다.

이 출발선은 금융 공학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수리적 불일치였습니다. 시장에서 정상적인 금융 상품이라면 원금과 합당한 투자 수익을 합산해 원리금을 지급하지만, 초기 국민연금은 낸 돈의 수 배에 달하는 급여를 약속했습니다. 2025년 2월 19일 연금개혁청년행동이 분석한 데이터에 따르면, 1988년 제도 도입 당시 가입해 33년간 보험료를 납부한 1960년생 가입자(평균소득 기준)가 86세까지 생존할 경우 총 납부 보험료는 4,909만 원인 반면, 평생 수령하는 총 연금액은 4억 1,278만 원에 달합니다. 자신이 납부한 총금액 대비 8.4배를 수령하는 셈이며, 이를 연평균 복리수익률로 환산하면 12.7%에 이릅니다.

초기 가입 세대에게 집중된 이러한 혜택은 학술 연구로도 증명됩니다. 200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국민연금연구원이 공동 진행한 분석에 따르면, 제도 도입 초기 세대인 당시 55세 전후 코호트이자 평균 소득의 50% 구간 가입자의 실질내부수익률(IRR)은 연 9%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당시 시장 실질이자율의 2배를 웃도는 수익률이 공적 제도 안에서 확정 지급된 셈입니다.

2024년 2월 21일 KDI의 이강구·신승룡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이 1988년 출범 당시부터 장기적 지속가능성이 결여된 채 출발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도입 초기에는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가 급증하는 반면 연금을 타가는 수급자는 적어 기금이 누적되는 착시가 발생하지만, 기금이 소진된 후 약속된 소득대체율 40%를 지급하려면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보험료율은 30~40%, 평균 약 35% 내외까지 치솟게 됩니다.

1998년과 2007년, 절반만 성공한 두 번의 수술

태생적인 저부담·고급여 구조가 품은 결함은 제도가 정착 단계에 접어들면서 빠르게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정부 역시 이 기형적인 계산법을 방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술대 위에 오른 연금개혁은 번번이 정치적 저항에 부딪히며 절반의 봉합에 그쳤습니다.

첫 번째 제도 개혁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단행되었습니다. 1998년 12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전부개정법률안은 40년 가입 기준 70%였던 소득대체율을 60%로 10%포인트 낮췄습니다. 이와 함께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수급개시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단계적 상향 조정하는 방안이 포함되었습니다. 2013년부터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연장해 65세에 도달하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최소 가입 기간을 15년에서 10년으로 단축해 수급 자격의 문턱을 낮추는 조치도 병행되었습니다.

하지만 1998년 개혁은 수입 측면을 손대지 못했습니다. 1986년 법 제정 당시 예고되었던 단계적 인상 일정에 따라 1998년 보험료율이 9%에 도달했으나, 소득대체율을 60%로 낮춘 상태에서도 9%라는 보험료율은 장기 수지를 맞추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습니다. 정부와 국회는 외환위기의 고통을 겪고 있던 국민에게 추가적인 보험료 인상을 요구하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개혁 시도는 참여정부에서 본격화되었습니다. 2003년 10월 정부는 국민연금의 장기 재정 안정을 위해 보험료율을 당시 9%에서 15.9%로 단계적으로 끌어올리고, 소득대체율은 60%에서 50%로 낮추는 내용을 담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2010년부터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보험료율을 15.9%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50%로 낮추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장기간 표류했습니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 모두 유권자들의 직접적인 반발을 부르는 보험료 인상안 처리를 꺼렸기 때문입니다. 격렬한 대립 끝에 2007년 4월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결국 부결되었습니다. 개혁안이 좌초되자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유시민 장관은 연금개혁안 부결 직후 정치권을 향해 보험료율 인상 등 고통 분담이라는 약사발은 엎어버리고 기초노령연금이라는 사탕만 먹었다고 비판하며 장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좌초 위기에 몰린 국회는 2007년 7월 3일 절충안 성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법안의 뼈대는 보험료율을 9%로 동결하는 대신, 60%였던 소득대체율을 2008년 50%로 10%포인트 즉시 인하하고 매년 0.5%포인트씩 낮춰 2028년까지 40%로 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2007년 개혁은 미래의 지출 약속인 소득대체율을 40%까지 축소했다는 점에서 재정 소진 시점을 늦추는 데 일부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연금 재정 방정식의 핵심 축인 보험료율은 1998년 9%에 도달한 이래 단 한 차례도 인상하지 못한 채 묶였습니다. 내는 돈인 보험료율은 9%로 묶어둔 채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만 40%로 깎아내린 기형적 타협은 급여 수준의 적절성을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재정 안정성을 온전히 확보하지 못한 ‘반쪽 개혁’으로 평가받았습니다. 1998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친 미완의 수술은 부과방식 전환이라는 미래 청구서의 총량을 온전히 줄이지 못한 채 시간을 버는 임시 처방으로 끝났습니다.

인구 절벽의 습격: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2050년

제도 설계의 구조적 결함이 수습되지 못한 사이, 외부에서 닥쳐온 인구 통계의 지각변동은 재정 시계를 회복 불가능한 속도로 앞당겼습니다. 연금을 떠받치는 근로 세대는 급격히 줄어들고 연금을 받아 가는 은퇴 세대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 피라미드의 역전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부과방식 전환의 대가가 가혹해지는 이유는 단순히 돈을 적게 걷어서가 아니라, 돈을 낼 사람 자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3년 12월 14일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 데이터는 생산연령인구와 고령인구의 역전 궤적을 숫자로 증명합니다. 생산연령인구(15~64세) 100명이 부양해야 하는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비율을 뜻하는 노년부양비는 2022년 24.4명이었습니다.

이 수치는 가파른 곡선을 그리며 상승합니다. 노년부양비는 2030년 38.0명으로 늘어나고, 2040년에는 59.1명으로 치솟습니다. 기금 소진 시점으로 지목된 2055년을 불과 5년 앞둔 2050년에 이르면 노년부양비는 77.3명에 도달합니다.

인구 충격은 2050년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2070년 노년부양비는 103.0명을 기록하며 100명을 돌파하고, 2072년에는 104.2명까지 치솟습니다. 일터에서 일하며 소득세를 내고 사회보험료를 납부하는 생산연령인구보다 연금을 수령하는 65세 이상 노인의 숫자가 더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현실화되는 것입니다.

생산연령인구의 축소와 초고령화의 결합은 국민연금 재정 곡선을 정면으로 타격합니다. 2023년 1월 27일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가 발표한 제5차 추계 결과에 따르면, 기금은 2041년 지출 증가로 연간 수지 적자로 돌아선 뒤 2055년 적립기금이 0원으로 완전 소진됩니다. 2040년대부터 본격화되는 대규모 은퇴 행렬과 급감한 청년층 가입자의 납부액 격차를 감당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이 인구 곡선 위에서 기금이 바닥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는 이미 계산되어 있습니다. 2024년 2월 21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이강구·신승룡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1988년 출범 당시부터 장기적 지속가능성이 결여된 채 출발했으며, 기금이 소진된 이후 약속된 40%의 소득대체율을 그대로 지급하려면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할 보험료율은 소득의 30~40%, 평균 약 35% 내외까지 폭등합니다.

단순한 모수 조정만으로는 이 거대한 인구 충격을 상쇄하기 어렵습니다. KDI 연구진은 현행 확정급여형(DB) 체계에서 보험료율을 18%로 대폭 인상하더라도 기금 고갈 시점은 2079년으로 늦춰지는 데 그친다고 분석했습니다. 세대 간 부양 부담을 없애는 완전적립식 신연금을 도입하지 않으면 보험료율을 2배로 올려도 장기적 재정 안정을 달성할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정부 차원의 대응책 역시 인구 역전의 파고를 완전히 넘어서지 못합니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 9월 4일 공식 발표한 연금개혁 추진계획에 따르면,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2%로 상향하는 모수개혁을 단독 추진할 경우 기금 소진 시점은 2056년에서 2072년으로 16년 연장되는 데 그칩니다. 2036년 자동조정장치를 함께 도입해야 소진 시점을 최대 2088년까지 연장할 수 있습니다.

35년 동안 방치된 저부담·고급여의 구조적 결손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인구 역전의 파도가 겹치면서 공적연금 제도는 지속 불가능한 한계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노인 104.2명을 부양해야 하는 2072년의 인구 지형 아래서, 현행 연금 구조는 미래 세대에 감당하기 어려운 재정 청구서를 넘기며 2055년 기금 소진이라는 확정된 결말을 향해 굴러가고 있습니다.

세계 3대 연기금의 투자 실력, 수익률로 적자를 메울 수 있을까?

1,100조 원 굴리는 큰손, 전주 기금운용본부의 실제 성적표

전북 전주시 덕진구 기금운용본부 사옥에서 굴리는 국민연금 적립기금은 2023년 말 기준 1,035조 8,000억 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1,000조 원 선을 넘어섰습니다. 1988년 기금 설치 이후 2023년 말까지 기록한 기금운용 연평균 누적 수익률은 금액가중수익률 기준 5.92%였으며, 총 누적 운용수익금은 578조 원에 달했습니다. 투자를 통해 축적한 운용 수익이 기금 적립금의 상당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단일 연도 기준으로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낸 해는 2023년이었습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는 2023년 한 해 동안 금액가중수익률 잠정 기준 13.59%(시간가중수익률 기준 14.14%)를 기록하며 1999년 기금운용본부 설립 이래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습니다. 1년 동안 벌어들인 연간 운용 수익금만 126조 7,153억 원(약 127조 원)으로 집계되었습니다.

2023년의 성과는 주식 시장의 호조와 자산 배분이 견인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 6월 28일 발표한 2023년 성과평가 결과에 따르면 시간가중수익률 기준 자산군별 수익률은 해외주식 23.89%, 국내주식 22.12%, 해외채권 8.84%, 국내채권 7.40%, 대체투자 5.80%를 기록했습니다. 해외주식은 미국 빅테크 중심의 호조가 반영되어 23%대의 수익률을 냈고, 국내주식 역시 22%대의 높은 성과를 냈습니다. 대체투자의 경우 배당과 이자 수익, 환율 상승 효과가 존재했으나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공실률 상승에 따른 가치 조정이 반영되면서 5.80%를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운용 실적은 2022년 12월 27일 제9대 기금운용본부장(CIO)으로 취임한 서원주 본부장의 포트폴리오 관리와 맞물려 있습니다. 공무원연금공단 CIO 출신인 서원주 본부장은 호실적을 바탕으로 기존 2년 임기(2024년 12월 26일 만료)에서 2025년 12월 26일까지 1년 연임을 확정 지었습니다. 서원주 본부장을 비롯한 대체투자 간부진은 2025년 1월 호주를 직접 방문해 멜버른 항구 등 약 8조 8,700억 원(97억 호주달러) 규모의 기존 대체투자 자산을 점검하고 현지 사모펀드인 PEP, 맥쿼리, 어웨어슈퍼 등 글로벌 운용사들과 면담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단기 수익률 지표만 놓고 보면 국민연금의 성과는 해외 주요 연기금 및 국부펀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기획예산처가 2026년 5월 26일 국무회의에 보고한 ‘2026년 기금평가 결과’에 따르면, 2025년도 단년도 운용수익률에서 한국 국민연금은 18.97%를 기록했습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의 15.11%,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의 7.66%를 동시에 앞지른 실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계열을 10년 단위의 장기로 넓히면 기금 간의 실적 격차는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연기금·국부펀드 전문 분석기관 글로벌 SWF가 2025년 8월 11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10년 연율 환산 수익률에서 노르웨이 GPFG는 7.25%를 달성한 반면 한국 국민연금은 6.56%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캐나다 CPPIB는 8~9%대 상위권 수익률을 유지했습니다.

과거 10년 구간에서도 유사한 차이가 확인됩니다. 국회예산정책처 추계세제분석실이 2019년 8월 발간한 분석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연평균 운용 수익률은 캐나다 CPPIB가 11.3%, 노르웨이 GPFG가 8.3%였던 데 반해 한국 국민연금은 5.5%에 머물렀습니다. 단년도 시장 상황에 따라 일시적인 역전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10년 이상의 장기 누적 수익률에서는 해외 선도 연기금들이 1~2%포인트 안팎 앞서왔습니다.

이러한 장기 수익률 격차의 배경에는 자산배분 구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본시장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노르웨이 GPFG는 기금 전액을 해외 자산에 분산 투자했고, 캐나다 CPPIB는 자국 주식 비중을 3.3%까지 낮췄습니다. 반면 2017년 말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는 채권 50.3%, 주식 38.6%, 대체투자 10.8%였으며 전체 자산의 67.8%가 국내 자산에 편중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중기 자산배분 계획을 통해 해외 자산과 위험 자산 비중을 단계적으로 높여왔습니다. 2022년 5월 27일 기금운용위원회가 의결한 ‘2023~2027년 국민연금기금운용 중기자산배분안’에 설정된 2023년 말 목표 비중은 국내채권 32.0%, 해외주식 30.3%, 국내주식 15.9%, 대체투자 13.8%, 해외채권 8.0%였습니다. 해외 투자 비중을 끌어올리고 채권 비중을 조정하면서 수익성을 높여온 흐름입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투자 실력은 세계 유수의 연기금과 견주어도 결코 뒤처지는 수준이 아닙니다. 해외 주식과 대체투자를 확대하며 기금 1,000조 원 시대를 열었고, 누적 578조 원이라는 운용 수익을 창출해 재정 방어의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문제는 이처럼 준수한 투자 실력이 제도 자체의 구조적 결손을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인가 하는 점입니다.

수익률 1%포인트를 더 올리면 고갈은 몇 년 늦춰질까?

국민연금의 재정 위기가 공론화될 때마다 기금 운용 수익률을 획기적으로 높여 고갈을 막아내자는 주장이 거듭 제기되어 왔습니다. 국민의 직접적인 부담을 늘리거나 지급액을 깎는 정치적 부담을 피하면서, 기금운용본부의 투자 성과를 통해 미래 적자를 메우겠다는 구상입니다.

정부 정책 역시 이러한 기대에 따라 목표치를 상향 조정했습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024년 9월 4일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당시 기준치로 설정했던 장기 기금운용 수익률 4.5%를 5.5% 이상으로 1%포인트 상향하겠다고 공식화했습니다. 보험료율과 명목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에 기금운용 수익률 1%포인트 제고를 결합함으로써, 당초 2056년으로 예상되던 기금 소진 시점을 2072년으로 16년 연장하겠다는 복안이었습니다.

기금운용 수익률 1%포인트 상승이 연금 재정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2023년 4월 2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민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자본시장연구원 남재우 연구위원은 기금운용 수익률이 1%포인트 오르면 국민연금 기금의 소진 시점을 약 5년 늦출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가입자들의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2%포인트 인상하는 것과 대등한 재정적 효과입니다. 자본시장연구원 이효섭 선임연구위원 역시 2025년 7월 2일 통합포트폴리오(TPA) 체계 도입의 효과를 분석하며, 기금이 자산운용 체계를 유연화해 수익률을 1%포인트 끌어올릴 경우 고갈 시점을 5년 뒤로 늦출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뮬레이션 결과가 드러내는 본질은 수익률 제고의 위력이 아니라 물리적 한계입니다. 매년 1%포인트의 추가 수익률을 지속해서 달성하는 극히 어려운 운용 성과를 전제하더라도, 수익률 제고 자체만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시간은 5년 안팎에 불과합니다. 기금 소진 시점이 몇 년 뒤로 이동할 뿐, 적립기금이 결국 바닥을 향해 수렴하는 궤적 자체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수익률 1%포인트의 한계가 발생하는 이유는 기금의 현금흐름 구조에 있습니다. 2024년 2월 21일 발표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국민연금 구조개혁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 적립액은 2023년 1,015조 원(GDP의 44.8%)에서 출발해 2039년 1,972조 원으로 정점에 도달한 뒤 급격히 감소해 2054년에 전액 소진될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 적립액이 지속해서 불어나는 축적기에는 기금 수익률이 상승할 때 발생하는 절대 수익이 상당하여 재정에 긍정적으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2040년대에 진입해 고령화와 은퇴가 심화되면 연간 지급해야 할 급여 총액이 연간 수입과 운용 수익을 넘어서기 시작합니다. 기금 적립액이 급격하게 녹아내리는 수축기에는 수익률을 아무리 높여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원금 자체가 축소됩니다. 적립 원금이 크게 줄어든 상태에서는 높은 운용 수익률을 기록하더라도 발생하는 절대 수익금이 적어, 매년 쏟아져 나오는 거대한 연금 지급액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앞 장에서 규명한 저부담·고급여 구조의 누적 청구서와 인구 역전은 투자 수익이라는 금융 변수 하나로 메울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 있습니다.

여기에 거대 연기금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기금 규모의 제약'이 가세합니다. 기금 자산이 1,000조 원을 넘어서고 규모가 커질수록 시장 충격을 주지 않고 포트폴리오를 운용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려워집니다. 소규모 펀드는 유망한 자산군에 유연하게 자금을 배분해 초과수익을 노릴 수 있지만, 1,000조 원이 넘는 메가 펀드는 단일 자산군에 집행해야 하는 자금 규모 자체가 거대하여 시장 가격에 왜곡을 부르는 유동성 제약에 직면합니다. 결국 기금 규모가 비대해질수록 포트폴리오는 시장 벤치마크를 추종하는 방향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으며, 지속적인 초과수익 창출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목표 수익률을 인위적으로 높이는 시도는 그에 비례하는 투자 위험을 수반합니다. 채권 비중을 낮추고 주식이나 고위험 대체투자 비중을 높여 장기 수익률을 끌어올리려 할 경우, 시장 폭락기에 직면할 평가손실의 폭은 치명적으로 확대됩니다. 기금 자산 규모가 막대해진 상태에서 대규모 글로벌 금융 충격이 발생한다면 단기간에 막대한 평가손실을 입을 수 있으며, 이는 가입자들이 납부한 연간 보험료 수입을 훌쩍 넘어서는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정부가 제시한 '수익률 1%포인트 제고를 통한 재정 안정'은 인구 고령화와 제도적 수지 불균형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근본적으로 막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방파제입니다. 투자 실력으로 5년 안팎의 시간을 벌 수는 있지만, 시간을 번 대가로 자산 덩어리가 커질수록 기금은 더욱 복잡하고 심각한 구조적 역풍을 마주하게 됩니다.

‘셀 코리아’의 딜레마: 2040년대,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야 연금을 준다

기금운용본부가 마주한 가장 구조적인 모순은 자산이 정점을 찍고 줄어들기 시작하는 청산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기금이 불어나던 축적기에는 매달 들어오는 보험료 수입으로 연금을 지급하고 남은 돈으로 주식과 채권을 사들이면 되었지만, 수축기에는 부족한 연금 지급액을 채우기 위해 보유 자산을 매달 강제로 처분해야 합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가장 민감하게 타격을 받는 자산군은 국내 주식입니다. 2025년 2월 24일 자본시장연구원 이효섭·권민경·윤선중 연구진이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를 바탕으로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보유 규모는 2040년 242.2조 원으로 정점에 도달합니다. 이후 연금 지급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매각이 시작되면서 보유 잔고는 급격히 감소하며, 기금 소진 시점인 2055년에는 국내 주식 적립 규모가 마이너스 6.5조 원으로 결손 상태에 이릅니다. 정점을 기록한 뒤 기금이 소진되는 시점까지 국내 주식 시장에서 대규모 지분을 현금화해 빠져나가야 하는 경로입니다.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이 매각 작업은 자본시장에 지속적인 하방 압력을 가합니다. 국민연금공단 집계에 따르면 코스피 평가가치 상승 등으로 기금 내 국내주식 적립 규모 및 비중은 2024년 말 약 139조 원(11.5%)에서 2026년 3월 기준 약 320조 원(21%)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국내 대형 상장사 대부분의 최상위 주주 자리를 국민연금이 차지하고 있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지분 구조에서 기금운용본부가 2040년대 이후 연금 지급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주요 대형주를 지속해서 처분하기 시작하면 국내 주식시장은 상시적인 매도 물량에 노출됩니다.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자산을 처분하는 행위 자체가 주가지수를 끌어내리고, 하락한 주가는 국민연금이 향후 매각할 보유 주식의 평가 가치를 더욱 떨어뜨리는 자가당착의 악순환을 유발합니다. 시장 유동성이 위축되고 민간 자본의 이탈이 이어지는 ‘셀 코리아’ 현상이 공적 기금의 청산 일정에 따라 현실화되는 구조입니다.

채권 시장의 왜곡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금이 연금 지급을 위해 보유 중인 대규모 국내 채권을 시장에 내다 팔면 채권 가격이 하락하면서 채권 금리가 상승합니다. 이는 국채 조달 금리와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금리를 동시에 끌어올려 실물 경제 전반의 차입 비용을 압박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국민연금이 국내 자산 비중을 줄이고 해외 투자를 확대해온 배경에는 이러한 시장 왜곡 우려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22년 9월 6일 발간한 「국민연금 1,000조원 시대의 장기 전망과 기금운용체계 개편」 보고서에서 분석했듯, 기금 규모가 1,000조 원을 돌파하면서 발생하는 국내 금융시장의 규모 한계와 자국 편향(홈 바이어스) 문제를 완화하고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작업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해외 자산의 확대는 수축기에 진입했을 때 또 다른 거시경제적 충격을 유발합니다. 연금 지급을 위해 해외 주식과 채권을 처분해 국내로 회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외환 거래 문제입니다. 기금 축적기에는 해외 자산을 매입하기 위해 대규모 원화를 달러로 환전하면서 외환시장의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반대로 2040년대 이후 적립금이 수축 국면에 들어서면 해외 자산을 매각해 확보한 막대한 달러를 다시 원화로 환전해 수급자들에게 지급해야 합니다. 대규모 달러 자산이 지속해서 원화로 환전되는 흐름은 국내 외환시장에 비정상적인 달러 공급 과잉을 유발해 원화 가치를 급격히 밀어 올리는 환율 변동성을 초래합니다. 기금의 거대한 자산 덩어리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현금화 작업 자체가 국내 주식과 채권, 외환시장의 가격 균형을 연쇄적으로 흔드는 구조적 딜레마입니다.

더 내고 덜 받는 개혁, 해외는 어떻게 풀었고 우리는 왜 싸우는가

2024년 공론화위원회가 남긴 세대 갈등의 상처

2024년 봄 국회가 추진한 연금개혁 공론화 과정은 한국 사회가 연금 방정식을 둘러싸고 겪고 있는 세대 간 시각차를 압축적으로 드러낸 장면이었습니다. 2024년 3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위원장 김상균)는 만 18세 이상 국민 1만 명을 대상으로 기초조사를 진행한 뒤, 주민등록 인구 기준의 성별, 연령별, 지역별 비율에 맞춰 500명의 시민대표단을 선발했습니다. 네 차례에 걸친 숙의토론을 거쳐 2024년 4월 22일 최종 3차 설문조사를 끝까지 완주한 인원은 492명이었습니다. 공론화 절차의 공정성에 대해서는 시민대표단의 93.0%가 공정했다고 평가할 만큼 숙의 과정 자체는 높은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받았습니다.

논쟁의 핵심은 테이블 위에 올라온 두 개의 상반된 선택지였습니다. 1안은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는 대신 소득대체율을 50%로 끌어올리는 ‘소득보장안’이었습니다. 2안은 보험료율을 12%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현행 40%를 그대로 유지하는 ‘재정안정안’이었습니다. 두 안 모두 현행 59세인 의무가입 상한 연령을 만 64세로 연장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이 가입 상한 연장 방안에는 시민대표단의 80.4%가 찬성했습니다.

최종 조사 결과 시민대표단의 56.0%는 1안인 소득보장안을 선택했습니다. 재정안정을 중시한 2안의 지지율은 42.6%에 그치며 1안이 13.4%포인트 앞섰습니다. 연령별 세부 지표에서도 18~29세 청년층 참여자 79명 중 53.2%가 1안을 지지해 2안(44.9%)보다 높은 선택을 나타냈습니다. 보험료를 더 내더라도 노후에 돌려받는 연금액을 두텁게 보장받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인식이 공론화위에 참여한 다수를 점한 것입니다.

그러나 공론화위 시민대표단 청년층 다수가 소득보장안을 선택했던 결과와 달리, 공론화 발표 직후 장기 재정 부담을 우려하는 미래 세대 일각과 재정 추계 전문가 그룹을 중심으로는 강한 반발이 터져 나왔습니다. 선택된 안이 약속하는 수치와 그 수치가 초래할 재정적 귀결 사이의 수학적 모순 때문이었습니다. 2024년 4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재정 분석에 따르면, 시민대표단이 다수로 선택한 1안(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을 채택할 경우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점은 현행 2055년에서 2061년으로 6년 연장되는 데 그칩니다. 반면 2093년까지 발생하는 제도 누적 적자는 현행 제도 대비 702조 원이 더 늘어나는 것으로 계산되었습니다. 보험료율을 올려 거두어들이는 수입보다 소득대체율을 올려 미래에 지출해야 할 연금 부채의 증가 폭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반면 2안(보험료율 12%·소득대체율 40%)을 적용할 경우 기금 소진 시점은 2062년으로 7년 연장되며, 2093년까지의 누적 적자는 현행 대비 1,970조 원 감소하는 것으로 추계되었습니다. 1안은 보험료를 인상한다는 외형을 갖추었으나 실질적으로는 급여 지출 약속을 더 큰 폭으로 늘려 적자의 총량을 키우는 구조였습니다.

이러한 재정 추계 수치는 장기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는 청년층에게 직관적인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기금이 소진되는 2061년 이후에는 적립금이 바닥난 상태에서 당해 연도 은퇴 세대의 연금을 오직 그 시점 현역 세대의 보험료로 충당해야 하는 부과방식의 부담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소득보장을 위해 내린 다수결의 선택이 미래 세대에게 702조 원에 달하는 누적 적자를 추가 청구서로 떠넘긴다는 점이 통계로 제시된 셈입니다. 공론화위원회가 도출한 결론은 사회적 합의의 마침표가 되지 못하고, 모수만을 소폭 조정하는 개혁이 지닌 수리적 한계와 세대 간 이해관계의 균열을 재확인시키는 계기로 남았습니다.

모수개혁 vs 구조개혁: 땜질 처방을 넘어선 KDI 신연금 구상

국회와 정부가 수십 년간 매달려온 개혁 논의는 대부분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라는 숫자를 몇 퍼센트 올리고 내릴 것인가에 집중되어 왔습니다. 이른바 ‘모수개혁(Parametric Reform)’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확인했듯이 저출생과 고령화가 맞물린 인구 역전의 속도는 모수개혁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 연장의 효과를 압도합니다.

모수개혁의 수리적 한계는 국책 연구기관의 계산을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2024년 2월 21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이강구·신승룡 연구위원이 발표한 「국민연금 구조개혁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제도는 2054년 기금 소진 후 소득대체율 40%를 지급하려면 보험료율을 35% 내외까지 올려야 하는 구조입니다. 현행 확정급여형(DB) 제도의 기본 틀을 그대로 유지한 채 보험료율을 현행 9%의 두 배인 18%로 대폭 인상하더라도 기금 소진 시점을 늦출 뿐 2080년경 소진되는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내는 돈을 두 배로 올려도 인구 구조의 변화 속에서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부과방식의 부담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는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KDI 연구진이 제시한 대안이 바로 제도의 틀을 바꾸는 ‘신연금·구연금 분리’ 구조개혁입니다. 기존의 국민연금을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둘로 쪼개는 구상입니다. 개혁 시점 이전에 가입자들이 납부한 보험료와 그에 따라 발생한 연금 수급권은 ‘구연금’ 계정으로 묶고, 개혁 시점 이후 가입자들이 납부하는 보험료는 ‘신연금’ 계정으로 완전히 분리해 적립하는 방식입니다.

이 구상의 핵심은 신연금을 완전적립식(Funded System)으로 운영하고 기대수익비를 1로 보장하는 데 있습니다. 낸 돈과 운용수익을 합산한 만큼만 연금으로 돌려받도록 설계하여, 미래 청년 세대가 윗세대의 연금 적자를 메우기 위해 과도한 보험료를 떠안지 않도록 제도적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것입니다. KDI 분석에 따르면 완전적립식 신연금 체제에서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신연금 보험료율은 15.5%로 추산되었습니다. 미래 세대 입장에서는 기금 소진 후 35% 내외의 보험료를 감당해야 할 위험에서 벗어나, 자신이 낸 15.5%의 보험료에 상응하는 기대수익비 1의 연금을 확보하게 됩니다.

문제는 신연금 계정을 분리해 독립시켰을 때 뒤에 남겨지는 구연금의 재정 부족분입니다. 구연금 가입자들에게 이미 약속된 급여액은 과거에 납부했던 보험료 총액과 적립기금을 웃돕니다. 신연금 도입으로 미래 세대의 보험료 유입이 끊기면 구연금 기금은 재정 결손을 노출하게 됩니다.

KDI 연구진은 이 구연금의 미적립 충당금을 미래 세대의 보험료가 아닌 국가의 일반재정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과거 제도가 남긴 누적 부족분을 조세를 통해 국가 재정으로 직접 해결하자는 해법입니다.

그러나 일반재정 충당 방안은 막대한 재정적 부담에 직면합니다. KDI 추계에 따르면 2024년 제도를 즉각 단행해 구연금의 재정부족분을 일반재정으로 충당할 경우 필요한 규모는 GDP의 26.9%인 609조 원에 달했습니다. 거대한 규모의 조세를 공적연금의 과거 부채를 메우는 데 투입해야 신연금으로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계산입니다.

더욱이 개혁을 미룰수록 이 비용은 급격히 불어납니다. KDI는 구조개혁 단행 시점이 5년 지연되어 2029년에 시행될 경우, 재정으로 메워야 할 구연금 재정부족분이 869조 원까지 급증한다고 분석했습니다.

KDI의 신연금 구상은 미래 세대의 불신을 해소하고 기대수익비 1을 보장해 제도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수리적 모델입니다. 그러나 GDP의 26.9%에 달하는 구연금 부족분을 일반재정으로 떠안아야 한다는 조건은 상당한 조세 저항과 재정 부담을 수반합니다. 모수개혁은 시간 연장에 그치고 완전적립식 구조개혁은 막대한 재정부족분이라는 장벽에 부딪히는 교착 상태, 이것이 대한민국 공적연금이 당면한 구조적 현실입니다.

스웨덴과 일본의 생존법: ‘자동조정장치’라는 묘수

정치권이 수치 조정을 둘러싸고 표를 의식해 타협하지 못하거나 천문학적인 전환 비용 앞에서 결정을 미루는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던 국가들 역시 동일한 정치적 마비 상태를 경험했습니다. 선진국들이 이 교착을 돌파하기 위해 찾아낸 해법은 역설적이게도 정치인의 손에서 연금액 결정권을 빼앗는 방식이었습니다. 인구 통계와 경제 지표가 악화되면 법률 개정 없이도 연금 수령액과 재정이 자동으로 깎이도록 설계된 기계적 안전장치, 즉 ‘자동조정장치’의 도입입니다.

이 분야에서 가장 급진적인 구조개혁을 단행한 국가는 스웨덴이었습니다. 스웨덴 의회는 1998년 6월 기존의 확정급여형(DB) 제도를 대체하는 연금법을 통과시키고 1999년 1월 1일부터 명목확정기여형(NDC)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총 보험료율은 18.5%로 설정되었습니다. 이 중 16%포인트는 부과방식 가상계좌인 인콤스트펜숀(Inkomstpension)에 적립되고, 나머지 2.5%포인트는 가입자가 민간 펀드를 직접 선택해 투자하는 프리미에펜숀(Premiepension)에 배분되었습니다.

스웨덴 개혁의 본질은 가상계좌(NDC)의 작동 방식에 있습니다. 가입자가 낸 보험료는 장부상 개인 계좌에 가상으로 기록되지만, 실제 현금은 당해 연도 은퇴 세대의 연금을 지급하는 데 쓰입니다. 은퇴 시점에 돌려받는 연금액은 그동안 납부한 가상 적립금 원리금을 은퇴 코호트의 기대여명으로 나누어 산출합니다. 기대수명이 늘어날수록 매달 나누어 받는 연금 수령액이 자동으로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스웨덴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2001년 5월 법률 개정을 통해 올레 세테그렌 연구팀의 모델을 바탕으로 한 ‘자동재정안정화장치(ABM)’를 도입하고 2002년부터 현장에 적용했습니다. 매년 연금자산과 완충기금의 합을 미래에 지급해야 할 연금부채로 나눈 균형비율을 산출합니다. 만약 이 비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져 자산보다 갚아야 할 부채가 많아지면, 연금액을 인상할 때 통상 적용하던 평균임금 상승률 대신 안정화지수를 강제로 적용합니다. 연금액 증가율을 자동으로 삭감해 기금의 부채가 해소될 때까지 시스템이 스스로 지출을 조여 매는 구조입니다.

일본 역시 유사한 메커니즘을 제도화했습니다. 일본 국회는 2004년 6월 5일 공적연금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며 ‘거시경제 슬라이드’를 도입했습니다. 핵심은 수입의 상한과 지출의 자동 삭감을 동시에 묶는 방식이었습니다. 근로자 대상인 후생연금의 보험료율을 매년 단계적으로 인상해 2017년 18.3%에서 영구히 동결하도록 상한선을 못 박았습니다. 보험료율을 더 이상 올릴 수 없도록 고정하는 대신, 연금 지급액의 실질 가치를 자동으로 깎아 재정을 맞추도록 설계했습니다.

거시경제 슬라이드의 계산식은 건조합니다. 연금액을 물가나 임금 상승률에 맞춰 올려줄 때 전체 공적연금 피보험자 수의 감소율과 기대수명 연장률(약 0.3%포인트)을 합산한 조정률을 차감해 지급액을 산출합니다. 물가나 임금이 오르더라도 피보험자 감소와 기대수명 연장 폭만큼 인상 폭을 깎아 실질 구매력을 낮추는 방식입니다. 일본은 급여 수준의 극단적 추락을 막기 위해 부부 2인 모델 가구의 소득대체율이 50%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법정 마지노선을 설정했습니다.

이러한 해외 제도는 공적연금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지켜내는 데는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가입자에게 위험을 전가하면서 발생하는 대가가 뒤따랐습니다. OECD가 발간한 《Pensions at a Glance 2017》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은 연금액 조정이 가입자에게 전가되면서 2015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이 약 11%에 달하는 등 급여 적정성 약화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한국 정부 역시 재정 소진 시점을 늦추기 위해 이 자동조정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2024년 9월 4일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통해 보험료율 13% 인상, 소득대체율 42% 조정과 함께 인구와 경제 상황을 연동하는 한국형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036년에 이 자동조정장치를 가동할 경우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점을 현행 2056년에서 2088년까지 32년 연장할 수 있다고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자동조정장치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발이 뒤따랐습니다. 기계적 삭감 장치가 미래 세대의 실질 연금액을 대폭 깎아내릴 것이라는 분석이 잇따랐기 때문입니다. 2024년 9월 5일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국회 간담회에서 일본식 자동조정장치를 적용할 경우 1980년생과 1992년생의 총연금 수령액이 기존 대비 각각 79.77%와 80.72%로 떨어져 약 20%의 실질연금액 삭감이 불가피하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어 2024년 10월 7일 국회 전진숙 의원실과 연금행동이 발표한 재추계 분석에서도 월 연금액 130만 원, 30년 가입 기준 세대별 삭감률은 1975년생 20.3%, 1985년생 21.8%, 1995년생 22.1%, 2000년생 21.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1985년생 평균 가입자의 경우 평생 수령하는 순혜택이 37.8%(6,953만 원) 감소한다는 수치가 제시되었습니다.

결국 국회의 최종 선택은 모수 조정에 머물렀습니다. 2025년 3월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는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43%로 상향하며 국가 지급보장을 법률에 명문화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과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의 합의 과정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자동조정장치는 법안에서 제외되었으며, 국회는 이를 추후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후속 논의하기로 결정하고 법안 처리를 마무리지었습니다.

각자도생의 노후, 3050세대가 당장 실행해야 할 생존 포트폴리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을 절대 해지하면 안 되는 이유

제도 개혁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과 재정 고갈 논란이 반복될 때마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 무용론이 고개를 듭니다. 매달 급여에서 빠져나가는 보험료를 차라리 돌려받아 민간 금융상품에 투자하거나 예금에 넣어두는 편이 유리하지 않느냐는 불신입니다. 그러나 수리적 계산과 상품 구조를 냉정하게 대조해보면, 국민연금을 임의로 이탈하거나 납입을 기피하는 행위는 개인의 은퇴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가장 치명적인 손실을 부르는 선택으로 귀결됩니다.

국민연금이 지닌 대체 불가능한 특성은 전년도 물가상승률을 100% 반영해 지급액을 영구히 올려준다는 점입니다. 시중 생명보험사의 개인연금 상품은 사전에 정해진 공시이율이나 확정금리를 기준으로 원리금을 나누어주기 때문에, 장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화폐 가치 하락에 따른 실질 구매력 저하를 방어하지 못합니다. 반면 국민연금공단 발표에 따르면 공단은 2022년도 소비자물가상승률 5.1%를 2023년 1월 지급분부터 즉각 반영해 기존 수급자들의 연금액을 일괄 인상했습니다. 그 결과 월 200만 원 이상 수령하는 가입자 수는 2022년 12월 말 5,410명에서 2023년 1월 말 1만 5,290명으로 단 1개월 만에 약 2.8배 급증했습니다. 민간 금융시장의 어떤 확정형 연금도 5%가 넘는 거시 물가 변동을 이처럼 가입자의 연금 통장에 실시간으로 보전해주지 못합니다.

납입액 대비 돌려받는 원리금의 비율을 뜻하는 수익비 측면에서도 민간 상품과의 격차는 뚜렷합니다. 국민연금연구원 한정림 부연구위원이 2017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수급 기간이 10년 안팎만 되어도 수익비 1배에 도달해 원금을 회수합니다. 이후 수급 기간이 늘어날수록 기대수익비는 가파르게 상승합니다. 2017년 국민연금에 가입해 20년간 보험료를 납부한 월평균 소득 218만 원 가입자가 만 65세부터 연금을 수령할 경우, 수급 21년 차 시점의 누적 수익비는 1.9배에 달합니다. 수급 25년 차에는 2.2배까지 늘어납니다. 기대수명이 연장될수록 가입자가 손에 쥐는 총급여가 불어나는 종신 급여 구조는 민간 금융회사가 영리 목적으로 판매하는 상품에서는 수지상 성립할 수 없는 수식입니다.

제도의 재정적 결함과 별개로 이 시스템의 가치를 가장 영리하게 활용하고 있는 계층은 자산가들입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2026년 4월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25년 12월 말 기준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만 18세 국민연금 가입률은 10.6%를 기록했습니다. 전국 평균 가입률인 3.7%의 약 3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소득이 없는 만 18세 자녀를 임의가입자로 등록해 부모가 대신 첫 회 보험료를 납부해주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의 시작 시점을 앞당겨둠으로써 향후 경력 단절 등으로 발생할 공백 기간을 추후납부(추납) 제도로 메워 총 가입 기간을 극대화하려는 금융 테크닉입니다.

실제로 공적연금의 권리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흐름은 통계로 확인됩니다. 국민연금공단이 2024년 7월 31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3년 말부터 2023년 말까지 10년간 40~50대 중장년층 가입자는 1,278만 명에 달했으며 이들 중 노령연금 수급 자격인 최소 가입 기간 10년을 채운 수급권 확보자는 346만 명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20~30대 청년층 임의가입자 수 역시 약 2배로 늘었고 소득신고자는 49만 명 증가했습니다.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둘러싼 공방 속에서도 숫자를 읽는 가입자들은 납입 이력을 적극적으로 넓혀왔습니다.

직장인과 전업주부가 국민연금 수령액을 끌어올리기 위해 실행해야 할 핵심 실전 수단은 추후납부 제도의 적시 활용입니다. 실직이나 경력 단절 등으로 보험료를 내지 못했던 납부예외나 적용제외 기간의 보험료를 사후에 납부해 가입 기간을 복원하는 방식입니다. 다만 추납을 계획하고 있다면 제도 변경에 따른 비용 증가 일정표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보건복지부는 2025년 10월 1일 입법예고를 통해 임의가입자의 추납 보험료 산정에 적용되는 보험료율 상한 기준을 단계적으로 인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존 9%였던 상한선은 2026년 9.5%로 상향 조정되며, 이후 순차적으로 인상되어 2033년에는 13%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상한 기준이 오를수록 과거 공백 기간 1개월을 복원하기 위해 납부해야 하는 원금 부담이 직접적으로 늘어납니다. 같은 기간을 복원하더라도 2026년 이후로 납부를 미룰수록 가입자가 치러야 할 비용이 커지는 구조입니다.

일시금 납부에 따른 유동성 부담을 덜어주는 안전장치는 마련되어 있습니다. 정부는 2025년 6월 25일 공포된 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추납 보험료의 분할 납부 횟수를 최대 60회로 확정했습니다. 가입자는 최대 60회 범위에서 매월 1회 분할 납부를 선택할 수 있어, 목돈 지출 없이 장기 분납 계획을 세워 가입 기간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만 60세에 도달해 의무가입 대상에서 제외된 직장인이라도 최소 가입 기간 10년을 채우지 못했거나 수령액을 더 두텁게 만들고자 한다면 만 65세까지 납부를 이어가는 임의계속가입 제도를 반드시 활용해야 합니다. 소득 공백기 이전에 공적연금의 가입 기간을 단 1개월이라도 더 확보해두는 작업은, 향후 어떤 사적 금융상품으로도 메울 수 없는 평생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의 바닥을 다지는 일입니다.

연금저축과 IRP로 만드는 ‘나만의 사적 국민연금’

국민연금이 제공하는 종신 현금흐름의 기초를 확보했다면, 그다음 단계는 공적연금의 축소 재편을 방어할 2층(퇴직연금)과 3층(개인연금) 사적 방어막의 구축입니다. 앞서 확인했듯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은 구조적으로 하향 압박을 받고 있으며, 재정 수지를 맞추기 위한 수식의 결론은 개인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노후 자산의 확대로 귀결됩니다. 공적연금에만 기댄 은퇴 설계가 불가능해진 현실에서 3050세대가 실행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세액공제 한도를 극대화한 연금저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의 결합입니다.

연금계좌를 활용한 자산 형성의 출발점은 정부가 소득세법을 통해 부여하는 세제 혜택을 남김없이 흡수하는 작업입니다. 국회는 2022년 12월 23일 소득세법 개정을 통해 연금저축의 단독 세액공제 납입한도를 기존 400만 원에서 600만 원으로 상향하고, IRP를 합산한 총 세액공제 대상 납입한도를 연간 700만 원에서 900만 원으로 확대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이에 앞서 2022년 7월 21일 발표한 세제개편안을 통해 과거 50세 이상자에게만 제한적으로 부여하던 추가 공제 혜택 등 복잡한 연령·소득별 차등 규정을 단순화하여, 모든 가입자에게 동일한 연금계좌 합산 한도 900만 원을 적용하도록 제도를 일원화했습니다.

연간 900만 원 한도를 채웠을 때 주어지는 환급액은 투자 시작 단계에서 확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듭니다. 총급여 5,500만 원(종합소득금액 4,500만 원) 이하 근로자에게는 15%(지방소득세 포함 16.5%)의 세액공제율이 적용되어, 기존 최대 환급액 115만 5,000원에서 늘어난 최대 148만 5,000원의 세금을 연말정산 시 돌려받습니다. 총급여 5,500만 원(종합소득금액 4,500만 원)을 초과하는 근로자의 경우에도 지방소득세를 포함해 13.2%(세액공제율 12%)가 적용되어 900만 원 납입 기준 118만 8,000원의 환급금을 확보합니다. 여기에 소득세법 제59조의3 제4항에 따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만기 자금을 연금계좌로 전환할 경우 전환금액의 10% 범위 내에서 최대 300만 원까지 추가 세액공제 한도가 더해져, 기본 900만 원에 합산해 해당 연도에 총 1,200만 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절세 제도를 마련해두고도 실제 계좌 안에서 굴러가는 자산은 방치에 가까운 손실을 겪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2026년 2월 27일 발표한 2025년 말 기준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적립금 현황은 가입자들의 극단적인 원금 보존 성향을 드러냅니다. 디폴트옵션 총 적립금 53조 3,000억 원(가입자 734만 명) 중 무려 85.4%에 달하는 45조 5,000억 원(583만 명)이 원리금보장형인 안정형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제도별로 집계된 DC 적립금 34조 3,000억 원과 IRP 적립금 19조 원의 대부분이 연 2%대 금리에 묶여 인플레이션에 실질 가치를 잠식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공시된 수익률 지표는 자산 배분의 방향을 명확한 수치로 제시합니다. 2025년 말 기준 디폴트옵션의 연간 수익률을 살펴보면, 안정형 상품의 연간 수익률은 2.63%에 머물렀고 전체 평균 수익률 역시 3.69%에 그쳤습니다. 반면 적극투자형 상품의 연간 수익률은 14.93%를 기록했고, 중립투자형은 10.81%, 안정투자형은 7.47%를 나타냈습니다. 연금저축 단독 한도 600만 원과 IRP 추가 납입 300만 원의 배분을 통해 매년 118만 8,000원에서 148만 5,000원에 달하는 확정 세액공제 혜택을 챙기더라도, 이를 연 2.63%의 안정형에 방치한다면 사적연금의 자산 증식 효과는 반감됩니다.

따라서 3050세대의 사적연금 포트폴리오는 납입 단계에서 확보한 세제 혜택을 바탕으로 적극투자형(14.93%)과 중립투자형(10.81%) 중심의 실적배당 자산 비중을 확대하는 구조로 재편되어야 합니다. 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당과 매매차익에 대해 세금을 즉시 떼지 않고 연금 수령 시점까지 과세를 미루어 원금과 이자가 함께 구르는 복리 효과를 온전히 누리는 전략입니다.

축적만큼이나 중요한 마지막 퍼즐은 은퇴 후 인출 단계의 세법 규격을 사전에 맞추는 일입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2023년 12월 21일 소득세법 개정을 통해 2024년 1월 1일부터 사적연금 분리과세 기준 금액을 기존 연간 1,200만 원 이하에서 1,500만 원 이하로 상향했습니다. 세액공제를 받은 납입액과 운용수익 등 과세대상 연금소득 합계액을 연 1,500만 원 이하로 맞추어 분할 수령하면, 종합소득에 합산되지 않고 무조건 분리과세로 납세를 종결할 수 있습니다. 연금저축 600만 원과 IRP 300만 원을 결합해 세액공제를 채우고, 이를 실적배당형 자산으로 불려 은퇴 후 연간 1,500만 원 이하로 나누어 인출하는 수리적 구조를 완성해야만 공적연금 축소기에 흔들리지 않는 사적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소득 절벽 5년을 버티는 브릿지 자금과 주택연금 시나리오

은퇴 설계에서 마주하는 구조적 복병은 연금 수령 총액의 크기가 아니라 현금흐름이 단절되는 시간의 간극입니다. 직장에서의 주된 일자리 퇴직 이후 법정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인 만 65세에 도달하기까지 소득이 급감하거나 단절되는 ‘소득 크레바스’ 구간이 발생합니다.

이 소득 절벽을 메우지 못하면 노후 자산의 붕괴는 조기에 현실화됩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주미 부연구위원이 2026년 9월 21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 중위소득 50% 이하 빈곤층 내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35.4%에서 2024년 47.6%로 12.2%포인트 급증했습니다. 65세부터 74세까지 초기 고령 빈곤층의 임시·일용근로 비중 역시 2016년 10.0%에서 2024년 17.3%로 7.3%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은퇴 직후 소득 공백기를 버텨낼 유동성이 부족한 고령자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불안정한 노동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통계가 증명합니다.

소득 절벽을 메우는 1차 완충재는 만 55세부터 인출이 가능한 사적연금의 브릿지 자금화입니다. 은퇴 직후부터 국민연금 수급이 시작되는 만 65세까지 연간 1,500만 원의 사적연금 분리과세 한도 내에서 적립금을 분할 인출하도록 수령 기간을 설정하는 방식입니다. 이 구간의 현금흐름을 확보하지 못해 조기노령연금을 신청하게 되면 평생 삭감된 연금액을 수령해야 하므로, 사적연금 계좌를 통한 가교 마련이 필수적입니다.

사적 금융자산과 함께 결합해야 할 자산은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주택연금입니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공개한 공식 통계에 따르면 주택연금 가입자의 평균 연령은 72세, 가입 주택의 평균 주택가격은 4억 200만 원, 가입자가 매달 수령하는 평균 월지급금은 129만 원으로 집계되었습니다. 거주 중인 주택을 유지하면서 매달 129만 원의 확정 현금흐름을 추가하는 구조입니다.

가입 요건과 한도 역시 개편되었습니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2023년 8월 29일 발표를 통해 2023년 10월 12일부터 주택연금 총대출한도를 기존 5억 원에서 6억 원으로 상향하고, 대상 주택의 공시가격 요건을 기존 9억 원 이하에서 12억 원 이하로 확대했습니다. 총대출한도 상향에 따라 종신지급 방식과 72세 가입자를 기준으로 시세 9억 원 주택의 월지급금은 283만 9,000원에서 294만 9,000원으로 4% 증가했습니다. 시세 10억 원 주택은 매월 327만 6,000원, 시세 11억 원 이상 주택은 최대 한도인 매월 340만 7,000원이 지급됩니다.

취약 계층을 위한 제도도 정비되었습니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2024년 5월 16일 우대형 주택연금 요건을 완화해 2024년 6월 3일부터 적용했습니다. 가입 대상 주택가격 상한을 시가 2억 원 미만에서 2억 5,000만 원 미만으로 올렸고, 담보대출 상환용 개별인출한도를 대출한도의 최대 90%까지 확대했습니다. 대출 잔액을 상환하지 못한 은퇴 가구라도 부채를 우선 정리하고 잔여 한도로 매달 연금을 수령할 수 있습니다.

국회는 2025년 3월 20일 국민연금 모수개혁 개정안을 통해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을 41.5%에서 43%로 조정했으나 자동조정장치 도입은 합의하지 못하고 과제로 남겼습니다. 공적연금 제도의 향방과 무관하게 개인이 설계해야 할 노후 현금흐름의 수식은 만 55세부터 65세까지 연간 1,500만 원 분리과세 한도를 활용하는 사적연금 브릿지, 만 65세 이후의 국민연금 종신 급여, 그리고 72세 시점 평균 주택가격 4억 200만 원을 담보로 매월 129만 원을 수령하는 주택연금의 단계별 결합으로 귀결됩니다.